The History | 수도회 역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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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지킨 고난의 시대  1940 ~ 1955

성가수도회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대한성공회의 보물인 성물들을 지켜내고 보존하기 위하여 매일 용기와 지혜를 청하는 기도를 드리며 용감하게 지켜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소중한 수도자의 목숨을 앗아 갔다.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구세실 주교, 홍갈로 신부와 함께 북한군에 끌려가 평양을 거쳐 북한으로 올라가는 긴 포로 생활을 했고 이 ‘죽음의 행진’을 견디지 못하고 1950년 11월 6일 모진 시베리아 계절풍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성가수도회가 설립된 후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 시대는 한국에 남아있던 다섯명의 수녀들에게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시기였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이비비 신모를 도와 자문역과 성무일과 이외에도 수도회 규칙 등을 번역하고 외국인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성가수도회의 기본 방향을 ‘선교활동’으로 규정하고, 수도회가 당면한 네 가지의 중요한 사업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첫째, 신자의 심방과 신앙교육, 둘째, 예비신자의 교리 교육, 셋째, 주일학교의 교육, 넷째, 수원 보육원 지원 등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본래의 목적과 정신을 잃지 않도록 당부했다. 전쟁과 북한의 공산화로 수도회는 일제 말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성물 등 중요한 집기를 보관하고 지키는 일이 과제가 되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수녀들은 용기와 지혜가 필요했다. 전쟁은 소중한 수도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리아 클라라 수녀는 구세실 주교, 홍갈로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 끌려가 평양을 거쳐 북으로 올라가는 긴 포로 생활을 했고 이 ‘죽음의 행진’을 견디지 못하고 1950년 11월 6일 모진 시베리아 계절풍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성가수도회가 설립된 후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 시대는 남아있는 다섯 수녀들에게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시기였다.

수도회 개척자로 수도회 기초를 놓고 역사를 만들어온 다섯 수녀의 헌신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순교 정신과 함께 모진 고난 속에서 수도회를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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